첫날
새벽 1시 출발이니 그냥 느긋느긋느긋하게 집에서 나왔다.
어차피 새벽의 인천공항에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을테니, 그렇게 생각하고 나왔는데
전철 이용해서 갈아타고 갈아타고 도착하니까 이미 12시 근처.
조금 여유를 부리고 싶었는데 여유고 나발이고 끝.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셔주고 출발... 이라고 생각했지만 별 거 없는 면세품 찾고나니 시간이 딱 탑승시각;;;
그래도 이 와중에 사진 찍을 건 찍었음.
저가항공사라 비행기도 마냥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더라.
하다하다 비상구쪽에 앉아보기도 처음이고, 이렇게 좁은 좌석도 처음이었고, 창가자리가 아닌것도 처음이었지만 다른것보다 놀랬던 건 기내식이 전혀 제공되지 않음.
대만-한국 간 거리가 짧아서 제공하지 않는다는데, 제공하지 않는것을 떠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개인돈으로 사서 먹고 마셔야했다.
여우같은 사람들은 먹을것을 싸서 들어와 몰래몰래 먹더라;;;
다행인 건 비행거리가 짧아서 그럭저럭 참을만하다는 것 뿐이지.
인천에서 조금 지연되더니, 대만 도착시간은 현지 3시 40분 정도에 이루어졌다.
입국신고서 쓰고 나가서, 짐 찾고 뭐뭐하니까 시간은 이미 4시 50분.
웃기는 건 진짜 한국사람 많았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 아니었는데, 이 비행기 타고 인천에서 대만 온 승객 80퍼센트 이상이 한국사람이었음.
개중에는 대만에서 체류해야 할 주소를 신고서에 쓰지 않아 입경 절차 못 밟고 다시 안쪽으로 쫓겨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자신이 왜 이런일을 당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길래 '호텔 주소 쓰세요'라고 했더니 그게 왜 필요하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라.
...우리나라도 외국인 들어올 때 체류지 안 쓰면 신고서 다시 작성하게 한다고;;;
가뜩이나 피곤한데 새벽까지 시달리는 입국 심사소 직원들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음.
그래서 사소한 거 하나도 까칠하게 반응하는 것이겠지만, 일부러 웃어주면서 중국어로 응대했더니 내 여권 보고, 나 보고 그러면서 웃어주더라.
조금 친절하게 대해 주었음.
절차 다 마치고 나오니까 아니나다를까, 택시 기사들 호객행위 시작.
타이페이까지 1500에 가 주겠다는데, 솔직히 그 시간에 타이페이가서 뭐 하려고??
어떤 아저씨가 나한테 와서 '혼자 왔으면 특가 1200에 해 줄게'라길래, '이 시간에 타이페이가서 할 것도 없다'라고 대답했더니 그냥 물러났음.
그리고 다른 택시기사들한테 나는 건드리지 말라는 식의 제스처를... ;;;
그런데 진짜 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걍 새벽 첫 차 생길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타고 타이페이 들어가는게 훨씬 나은 것 같음.
생각해보니 공항의 통신사 오픈 시간까지 기다리느니 차라리 타이페이를 먼저 들어가서 중화통신이든 뭐든 찾아가는게 나을 것 같아 아침 5시 반 차를 타고 타이페이로 들어갔다.
아놔, 공항에서부터 날씨가 꽤 춥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비가 오고 있을 줄은!!!
이 비가 타이페이 떠나는 날까지 그치지를 않았다 'ㅁ'
메인 스테이션 도착해서 우선 뭘 할까, 생각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더라.
우선 호스텔가서 먼저 짐을 맡긴다고 할까?? 라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도 안 열어줄 것 같고-일단 시간 자체가 스태프 출근 시간이 아니었음-우선 돌아다녀봤다.
비가 오는 타이페이는 눈 오는 서울보다 더 미끄러운 것 같다.. ;;
캐리어 끌고 돌아다니다가 희한하게 그 시간대 영업하는 커피숍이 있길래 아메리카노랑 티라미스 주문하고 착석.
상당히 빈티지한 느낌의 카페였는데, 자체 브랜드지만 타이페이에 여러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그런 곳이었음.
조금 먹다가, 단 거 들어가니까 그제서야 머리가 좀 돌기 시작.
취쨩 꺼내서 이리저리 사진찍고 있는데, 어라??
인천공항에서부터 봤던 청년 둘이 들어왔다.
더 웃긴 건 내가 학원가 거리 통과하면서도 이 둘을 봤다는건데, 뭔가 먹거리를 주문하고 있는데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무시하고 지나친 것을 이 카페에서 만났다는 것.
뭔가 신기해서, 직원에게 가이드북 달라고 하는 도중에 끼어들어서 몇 마디 했더니 그 둘도 완전히 신기해했다.
하지만 제일 신기해 한 사람은 카페 직원.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들이 이 카페에서, 그것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같은 국적이라는 사실에 직원이 제일 신기해했다.
그리고 이 둘 말고,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아가씨 하나도 갑자기 '저, 저도 합석해도 되나요... ?'라고 물어보면서 카페 직원이 진짜 놀랬다.
청년 둘은 나랑 같은 기간으로 여행을 왔고, 아가씨는 9박 10일 일정으로 놀러왔다고 하더라.
셋 다 대만은 초행길. 청년 둘은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셋 다 요즘 핫스팟으로 급부상한 대만이 궁금해서 찾아왔댄다.
다른것보다 꽃보다 할배 영향도 꽤 받은 것 같고...
이야기하다보니 시간도 제법 지났고, 나도 성미 아줌마랑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서 우선 내 숙소에 짐 보관하고 아가씨 주말 숙박하는것도 도와주고-숙박 예약 안 하고 대만에서 알아보기로 했단다-나와서 청년둘이랑 내 휴대폰 유심카드 사서 장착한 뒤 각자 일정 보다가 만나서 같이 놀기로 함.
문제는 내 컨디션이 극악으로 치달았고+쉬지 않고 내리는 비와 추운 날씨 덕에 몸 상태가 멜롱해져서 어디 나갈 상태가 되지 못 했다는 것.
어쨌든 약속이 있어서 성미 가게가 있던 장소로 가는데, 중간에 좀 서두르다가 빗길에 넘어졌다;;;
가게가 있는 근처이긴 했어도 설마 아줌마가 봤겠어?? 라는 생각을 했는데....
....보고 계셨음;;;;
만나자마자 '너 무릎 괜찮냐?? 그렇게 안 서둘러도 됐는데 뭐하러 뛰었어... '라고;;;
으아, 으하하하하;;;;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이탈리아식 음식점 들어가서 이것저것 시켜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간판도 그대로고, 벽면에 붙은 소환진도 멀쩡한데 파란 셔터문이 굳게 닫혀있는걸 보니 기분이 묘해지던...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한국에서부터 계속 걱정하던 일이 터졌다.
가뜩이나 안 좋은 컨디션이 최악이 되어버림. 진통제 먹고, 비행기에서 쓰던 모포 꺼내서 이불채로 둘러쓰고 일단 수면.
일어났더니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한테 카톡이 쏟아져 들어와 있는 상태였지만 도저히 어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어서 셋이 놀라 그러고 다시 수면.
그러다가 이 상태로 잠들어버리면 새벽에 배고파서 깰 것 같아 억지로 일어났다.
호스텔 스탭한테 이 근처에서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만한 음식점 추천받아서 간 곳이 바로 팔방(八方).
메인은 만두, 교자 종류지만 이런저런 음식도 같이 팔고 있었다.
아... 저 가격의 향연... ;ㅅ;
평소라면 이것저것 시켜놓고 먹었을텐데, 입맛도 잃어버린 상황이라 간단하게 만두 몇 개만 시켜서 먹었다.
대강 배만 채우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취침.
이렇게 의미없이 첫날 종료;;;